[먹튀클릭 공포] 1994년 ‘’살인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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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튀클릭 공포] 1994년 ‘’살인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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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9월 12일 한 젊은 여성이 사라졌다. 실종된 여성은 모 회사의 사장 비서로 근무하던 직장인 허승희 씨(가명·26)였다. 허 씨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이날 오후 7시께 서초동의 한 문화센터였다. ​ 주변인들에 따르면 평소 연극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퇴근 후 이곳에서 열린 연극세미나에 처음으로 참석했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이날 오후 9시경 허 씨는 2시간가량 진행된 세미나를 마치고 나온 것을 끝으로 돌연 모습을 감췄다. 허 씨가 귀가하지 않자 기다리다 못한 가족들은 다음날 경찰에 실종신고를 냈다. ​ 가출인가 실종인가. 허 씨가 극악한 살인마에 의해 희생됐음이 밝혀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원배 경찰청 수사연구관이 이번호에 전하는 사건은 15년 전 ‘살인택시’라는 용어를 유행시키며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일명 ‘부녀자 연쇄 강간살인사건’이다. ​ 수사팀은 수사착수 직후부터 허 씨가 납치 범행에 연루됐음을 감지했다. 우선 당시 상황에 대한 김 연구관의 얘기를 들어보자. ​ “대학졸업 후 직장에 다니며 착실한 생활을 해왔던 허 씨가 자발적인 가출을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따라서 수사팀이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허 씨의 금융거래 내역이었다. 그 결과 중요한 사실이 포착됐다. 실종 다음날인 13일 오전 9시 35분께 한 은행 풍납동 지점에서 30대 남성이 허 씨의 신용카드로 돈을 인출하는 모습이 폐쇄회로에 찍힌 것이었다. 이 남성은 세 차례에 걸쳐 총 41만 원을 인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많은 금액은 아니었지만 허 씨가 납치범행에 연루됐음을 드러내주는 결정적인 단서였다.” ​ 납치가 확실해지자 수사팀의 관심은 허 씨의 생사 여부에 집중됐다. 보통 돈을 목적으로 한 납치범행은 비밀번호를 알아내 돈을 인출하고 나면 범행은폐를 위해 피해자를 살해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시급한 것은 현금을 인출할 당시 은행 폐쇄회로에 찍힌 남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탐문수사 결과 드러난 문제의 남성은 이미 수차례의 전과가 있었던 온상현(가명·38)이었다. ​ 수사팀은 즉시 온 씨의 연고지와 주 활동무대를 중심으로 추적 작업에 들어갔다. 수사는 비밀리에 조심스럽게 진행됐다. 허 씨가 살아있을 거라고 굳게 믿은 허 씨 부모의 간곡한 요청 때문이었다. 언론을 통해 범인의 신상이 공개될 경우 오히려 범인을 자극해 딸이 생명이 위태로울 것을 우려한 탓이었다. ​ ‘온상현을 찾아라’ 관할서인 용산경찰서는 졸지에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수사착수 후 며칠이 지나도 온 씨의 행적은 일체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와중에 온상현에 대한 놀라운 정보가 접수됐다. 온상현이 또 다른 납치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 “확인 결과 전북 김제경찰서는 그해 9월 1일 새벽 서울 석촌동에서 한 30대 남성이 권혜옥 씨(가명·43)를 납치, 성폭행한 뒤 김제군 선암리의 야산으로 끌고 가 소나무에 묶어놓고 달아난 사건에 대해 수사 중이었다. 피해자 진술에 따르면 이날 새벽 1시경 영업용 스텔라 택시를 이용했다가 변을 당했다고 한다. 경찰은 범인이 번호판을 변조해 범행을 저질렀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범인의 신원이었다. ​ 김제경찰서는 권 씨가 당시 범인에게 뺏겼던 1200만여 원 중 100만 원권 자기앞수표 한 장이 모 은행 청량리 지점으로 들어간 사실을 포착하고 문제의 수표에 이서된 사람의 이름과 주소를 확인했다. 그 결과 드러난 범인이 놀랍게도 온상현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김제 경찰서 측에서는 온상현을 즉시 지명수배하지 않았고 그의 고향과 서울 거주지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수사를 벌여오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온상현의 위험성을 직시하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범인 검거의 공을 다른 수사팀에게 뺏기지 않으려는 욕심도 있었다. 이 사건에서도 경찰의 공조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 온 씨의 범행 수법으로 보아 허 씨 역시 납치되었거나 이미 변을 당했을 가능성이 다분했다. 더 이상의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온 씨는 1분 1초를 다퉈 검거해야할 요주의 인물이었다. 뒤늦게 김제경찰서로부터 수사자료를 전달받은 수사팀은 온 씨를 연쇄범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위험인물로 지목, 수사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실종 보름이 지나도록 범인 온 씨의 행방이 묘연했고 허 씨가 돌아올 기미도 보이지 않자 결국 경찰은 27일 공개수사에 들어갔다. ​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공개수사로 전환하기가 무섭게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바로 전국에 지명수배가 내려진 온상현이 27일 밤 서울 서초경찰서에 찾아와 자수한 것이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 “온상현은 이날 밤 9시 20분께 훔친 에스페로 승용차를 직접 몰고 버젓이 서초경찰서에 도착, 정문에서 ‘차량접촉 사고가 났다’고 말하고 청사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형사에게 ‘내가 온상현이다. 자수하러 왔다’고 말했다. ‘27일 오후부터 방송을 통해 내가 공개수배된 것을 알았다. 더 이상 도망치기 어려워 자살하려고 중부고속도로 곤지암 부근까지 갔으나 심경 변화를 일으켜 자수하게 됐다’는 것이 그의 얘기였다. 권 여인과 허 씨와 관련된 범행을 모두 시인한 온상현은 ‘8월부터 여자 50명 납치를 목표로 범행을 저질러왔으며 지금까지 훔친 택시를 이용해 부녀자 6명을 납치, 이들 중 허 씨 등 2명을 살해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자백했다.” ​ 경찰조사는 6건의 범행 중 온 씨가 살해했다고 자백한 두 명의 여성들과 관련된 사건에 대해 먼저 이뤄졌다. 온 씨가 살해했다고 밝힌 여성은 앞서 실종된 허 씨(4차 범행)와 14일 밤 퇴근길에 실종된 후 다음날 경북 금릉군 아포면의 경부고속도로 비상활주로 지하통로에서 사체로 발견된 박현주 씨(가명·24. 6차범행)였다. ​ 수사팀은 온 씨로부터 허 씨의 주민등록증에 자신의 사진을 붙인 위조신분증 등 가짜 신분증 5개와 망치 2개, 시너 2통, 택시번호판 2개, 스프레이와 여성용 로션, 운동화, 비닐봉지에 싸인 양말 등을 압수했다. ​ 수사팀은 일단 이날 새벽 3시경 온 씨를 대동하고 허 씨의 사체발굴 작업에 나섰다. 용인군 구성면 일대를 1시간가량 배회한 끝에 수사팀은 서울~수원 간 고속도로에서 100m가량 떨어진 야산에서 허 씨의 사체를 발견했다. 허 씨는 머리에 검은 비닐봉지를 쓰고 목과 무릎이 노끈으로 결박되어 있었는데 살해된 지 보름 이상이 지나 심하게 부패된 상태였다. ​ 온 씨의 자백에 따르면 그는 지난 12일 오후 9시 30분께 서초동의 한 문화센터 앞길에서 택시를 탄 허 씨를 납치했다. 그리고 바로 전날 납치해 야산에 묶어놨던 엄지은 씨(가명·21)가 있는 강원도 횡성으로 향했다. 하지만 허 씨를 데리고 그곳에 도착했을 때 엄 씨는 달아나고 없었다. 이에 온 씨는 허 씨를 태우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13일 오전 5시 30분께 비닐봉지를 머리에 씌워 허 씨를 살해한 뒤 경기도 신갈 부근 야산에 사체를 유기했다. “서울로 오는 도중 허 씨가 건방지게 굴고 반항했다”는 것이 살해 이유였다. ​ 하지만 온 씨의 살인행각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음날인 14일 온 씨는 또 한 건의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 “14일 밤 9시경 온상현은 송파구 가락동 가락성당 앞길에서 귀가 중이던 박현주 씨를 택시로 납치했다. 온상현은 방이동의 한 아파트 앞에서 성폭행을 시도했으나 박 씨가 완강하게 반항하자 흉기로 배와 목 등을 다섯 차례 찔러 잔혹하게 살해했다. 온상현은 박 씨를 태운 뒤 경북 금릉군으로 가서 사체를 유기했다. 박 씨의 사체는 실종 다음날 오전 11시께 경부고속도로 비상활주로 지하통로 입구에서 발견됐다. 온상현은 박 씨를 살해하는 과정에서 손가락을 심하게 다치는 바람에 천호동의 한 여관에 은신해 있는 상태였다. 박 씨는 온상현의 마지막 희생자였다.” ​ 온 씨는 조사과정 중 자신의 범행을 담담하게 털어놨고 기자들에게 ‘궁금한 것이 있으면 다 물어보라’는 여유까지 부렸다. 온 씨가 범행준비에 들어간 것은 8월 초. 서울 수유동의 한 운수회사에서 스텔라 택시를 훔친 온 씨는 상호와 번호판을 바꾼 뒤 철물점 등을 돌아다니며 범행에 필요한 삽과 칼, 노끈 등을 구입했다. 온 씨의 자백 등을 토대로 드러난 그의 범행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1차 범행 - 8월 28일 오전 7시 10분경 온 씨는 서울 암사동에서 22세가량의 여성을 납치, 영동고속도로로 향했으나 경기도 이천 부근에서 피해자가 도주하는 바람에 범행에 실패. ▲2차 범행 - 9월 1일 새벽 1시경 서울 백제고분로 앞길에서 권혜옥 씨를 납치해 성폭행한 뒤 김제의 야산으로 데려가 나무에 묶어놓은 뒤 달아남. ▲3차 범행 - 11일 밤 8시 30분께 온 씨는 독산동에서 엄은실 씨(가명·23)를 납치, 성폭행한 후 횡성의 야산으로 끌고가 소나무에 묶어놓은 뒤 도주. ▲4차 범행 - 12일 밤 9시 30분경 서울 서초동에서 허승희 씨를 납치, 13일 새벽 용인의 야산에서 살해. ▲5차 범행 - 13일 밤 8시경 서울 천호동사거리에서 노경민 씨(가명·22)를 납치해 경북 김천의 여관에서 성폭행 후 14일 새벽 5시께 집 앞에서 풀어줌. ▲6차 범행 - 14일 밤 9시께 가락동에서 박현주 씨를 납치, 성폭행하려다 반항하자 살해 후 경북 금릉군에 유기. ​ 하지만 정작 수사팀을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온 씨는 자수 직후 자신이 작성한 범행일지를 수사팀에 공개했는데 그 내용이 실로 충격적이었다. 일기식으로 수첩에 빼곡히 작성한 24쪽 분량의 범행일지에는 범행준비 과정은 물론 구체적인 내용과 피해자들의 인적사항, 당시의 심정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구리-안산 고속도로 입구에서 성폭행’ ‘현금 65만 원과 100만 원권 수표 두 장 등 275만 원만 갖고 나머지는 버림’ ‘강원도 횡성으로 가 성폭행하고 31만 원 빼앗음’ ‘3, 4일 놀면서 다음 범행 생각함’ ‘허 씨를 묶은 뒤 삽으로 5~7군데 내려침. 확인 못했으나 100% 죽었을 것임’ ‘박 씨를 5군데 칼로 찔러 죽이고 14만 6000원 빼앗음’ ‘내 손가락 3개 부상’ 등의 식이었다. ​ 특히 온 씨는 범행과정에서 자신의 심정을 기술하는가 하면 경찰 수사력을 조롱하기도 했다. 간단히 소개해보면 ‘지존파 사건으로 사회가 떠들썩함. 기다려라. 꼭 나의 목적을 달성해 이 부문 세계 제일이 되리라. 살해 목표인원 38명. 현재 2명 살해. 36명 남음. 목표인원 초과될 수 있음. 50명으로 변경될 수 있음’ 이런 내용이었다. ​ 온 씨는 어려서부터 극심한 가난과 부모의 불화를 겪으며 성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상경한 온 씨는 이후 가족 및 친지들과 연락을 끊고 공장과 막노동판을 전전하다가 범행 1년 전부터 택시기사로 근무했다. 온 씨는 범행동기에 대해 “어머니가 아버지 때문에 84년에 약을 먹고 자살했다. 아버지에 대한 복수로 범행을 저지르게 됐다” “80년 사고를 내고 억울하게 재판을 받은 뒤 7년간 사귀던 여자친구가 날 떠났다. 그 뒤로 세상을 보는 눈이 변했고 여자가 미웠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 강도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온 씨는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95년 사형이 집행됐다. ​ ​ 김원배 연구관의 사건 회고 당시 “목숨 걸고 택시 탄다” 흉흉 ​ “당시 지존파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발생한 이 사건은 국민들을 경악케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연달아 터지는 흉악범행에 민심이 보통 흉흉한 게 아니었어요. 사람들 입에서 ‘택시 타기 겁난다’는 말이 돌았을 정도였으니까요. 번호판을 바꾸거나 변조, 영업용 택시로 위장해서 돌아다니는 택시를 일반 시민들이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느냐는 거였죠. ‘목숨 걸고 택시 탄다’는 말이 나도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 김원배 연구관은 이 사건을 회고하면서 유독 많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권혜옥 씨 사건이 접수됐을 때 전국 경찰의 공 공조수사가 이뤄져서 온 씨가 검거됐더라면 두 명의 젊은 여성들이 목숨을 잃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특히 살해당한 여성들은 혼사를 앞 둔 건실한 직장인과 정신지체장애아들을 극진히 보살피던 특수학교 교사로 알려져 주변을 안타깝게 만들었다고 한다. ​ “온 씨는 개인적인 불행을 사회 탓으로 돌리며 지능적이고 잔인한 수법으로 무고한 피해자들 및 가족들에게 영원히 회복될 수 없는 참담한 상처를 입혔어요. 온 씨에 대한 법의 심판도 냉정했습니다. 잘못을 뉘우치고 자수했다해도 극형을 선고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당시 재판부의 논고였습니다.” ​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 이 사건은 2008.3.11 tvn 스페셜 범죄의 재구성 "살인의 기록"편 에서 재연 방영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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